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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안타까운 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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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3-17 22:50 조회5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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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大陸)정서, 반도(半島)정서, 섬(島)정서


종교적 개념을 떠나서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하는 문제에 관심이 끌린다.

창조론이 종교의 기본이 되는 기독교를 신앙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종교적 이념을 떠나서 진화론에 손을 들어주는 추세이다.

나도 물론 진화론을 지지하는 쪽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론(緣起論)이 바로 진화론이기

때문이다. 인연화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한다는 것이다.

동물과 식물의 세계에서도 그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인도(印度)대륙의 코끼리가 바다 건너 스리랑카로 넘어가

번식을 계속하면 점차로 덩치가 작아진다고 한다.

실제로 인도(印度) 코끼리보다는 스리랑카 코끼리가 덩치가 왜소하다.

인도의 생쥐가 스리랑카로 넘어가 세대번식을 계속하면 코끼리와는

반대로 덩치가 점점 더 커진다고 한다.

실제로 같은 생쥐라도 스리랑카 생쥐가 인도 생쥐보다는 크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코끼리와 생쥐는 대륙과 섬이라는 환경에 맞추어 진화를 한 것이다.

코끼리와 생쥐라는 인(因)이 대륙과 섬이라는 연(緣)에 따라

점차로 변화를 보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기법(緣起法)이자 진화론(進化論)인 것이다.

덩치가 큰 코끼리가 행동반경이 좁은 섬이라는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스스로 세대(世代)를 거듭하여 번식하면서 왜소해진 것이다.

반대로 덩치가 작은 생쥐는 도망 다닐 곳이 좁은 섬이라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대를 거듭하며 스스로 덩치를 키워온 것이다.

학문(學文)도 학자(學者)들도 그렇다고 한다.

대륙에서는 큰 학자들이 많이 배출된다고 한다.

스케일이 큰 학문들이 생성(生成)된다고 한다.

정치인들도 큰 정치인들, 큰 보스들이 많이 배출된다고 한다.

섬에서는 큰 학자보다는 고만고만한 학자들이 많이 배출된다고 한다. 아기자기하고 섬세(纖細)한 학문과 학자들이 많이 생성된다고 한다.

정치인들도 보스보다는 중견급 정치인들이 많이 배출된다고 한다.

경제인들도 섬 출신들은 근면하고 성실하며 실무분야에서 활동하고

대륙인들은 실무보다는 경영분야에서 우수한 두각을 보인다고 한다.

대륙에서 발생한 학문도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그 지역 정서에

따라 적응하며 변화한다.

그 과정에서 좀 더 세련되고 현실화 되어가는 것이다.

종교도 그렇다. 대부분의 종교들은 대륙에서 발생한다.

그리고는 점차로 교세(敎勢)를 확장하며 그 지역의 정서에 물들고

그 지역 환경에 적응하며 좀 더 세련되고 현실화되어 가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대륙기질(大陸氣質), 섬기질(氣質) 이라고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반도(半島)이다.

반도기질(半島氣質)은 어떤 것일까?

반도는 말 그대로 대륙도 아니고 섬도 아니다.

반(半) 섬이다. 반(半) 대륙이다.

대륙(大陸)정서(情緖)를 가지고 있다. 섬 정서(情緖)도 가지고 있다.

대륙인들보다도 더 강(强)하고 섬사람들보다도 더 섬세하다.

우리세대가 어려서 경험한 반촌(半村)정서로 보면 된다.

개발도상국 시절 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반촌 사람들이 도시인들보다도 더 유행에 민감하고 더 영악하고, 더 도시인 행세(行勢)를 했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대륙인 중국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중국의 문화는 우리나라에 유입(流入)되는 과정에서 그냥 그대로

유입된 것은 하나도 없다. 중국문화를 근거(根據)로 하여 독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낸 것이다. 불국사가 그렇고 석굴암이 그렇다.

고려청자가 그렇고 조선백자가 그렇다.

팔만대장경이 그렇고 훈민정음이 그렇다.

불교가 그렇고, 도교가 그렇고, 유교가 그렇다.

성리학(性理學)이 그렇고, 공산주의가 그렇다.

중국에서 발생한 유교의 성리학은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퇴계라는

걸출(傑出)한 학자를 만나 그 위력(威力)을 발휘한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물질문화에 앞선 서양문물을 성리학의 본고장

중국도 받아들이고 우리를 통하여 성리학을 받아들인 일본마저도

앞장서서 받아들였는데 성리학에 도취한 우리만 성리학이 아닌

모든 문물(文物)을 오랑캐문화로 매도하고 외면하고 배척하고

쇄국정책(鎖國政策)을 고수(固守)했던 것이다.

종주국(宗主國) 중국보다도 더 강(强)하고 더 별난 성리학을 만들고

고수한 것이다. 공산주의도 그렇다.

종주국 러시아는 공산주의 정책에서 새로운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 정책을 조금씩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말만 수정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더 심한 자본주의 정책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다르다.

아직까지도 초창기 공산주의혁명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초창기 공산주의 종주국인 러시아의 공산주의보다 더 심한 공산주의정책을 수립하고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에다 권력마저 세습(世襲)하는 지구상에 유일(唯一)한

역사상 초유(初有)의 철권 공산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남한도 그렇다. 대한민국도 그렇다.

해방과 더불어 물밀듯이 몰려온 미국문화에 미국사람보다도

더한 미국인이 되어가고 있다.

한글 맞춤법은 몰라도 영어 철자법은 알아야 한다.

국사(國史)는 몰라도 세계사(世界史)는 알아야 한다.

단군 할아버지는 몰라도 하나님 아버지는 알아야 한다.

국어학원은 안다녀도 영어학원 수강은 필수(必修)이다.

조선시대에는 중국말을 섞어 써는 사람이 유식한 사람이고,

일제시대에는 일본말을 섞어 쓰는 사람이 유식한 사람이고,

지금시대에는 미국말을 섞어 쓰는 사람이 유식한 사람이다.

조선시대에는 유교(儒敎)를 믿는 사람들이 판을 쳤다.

일제시대에는 천황폐하를 모시는 사람들이 판을 쳤다.

지금시대에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판을 친다.

그러면서도 우리민족의 고유한 민족혼(民族魂)을 지켜왔다.

그러면서도 우리민족의 전통 문화만은 지켜왔다.

불교(佛敎)를 국교로 신앙하던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도 토속신앙은

살아있었고 유교(儒敎)를 국교로 하고 불교를 배척하던 조선시대에도 불교는 유지되었다.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우며 창씨개명(創氏改名)등을 강행하며

민족혼을 말살하려고 했던 일제시대에도 민족의 얼을 지키고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고 가꾸어온 민족이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민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가정이 무너졌다. 가족이 사라졌다. 호적이 없어졌다.

경로효친 사상이 무너졌다. 상부상조의 미덕이 사라졌다.

충성, 효도, 씨족, 제사, 품앗이라는 낱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모두가 미국식으로 변화 된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다.

코끼리가 그렇고 생쥐가 그랬다.

이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다.

이 진화론은 부처님의 인연화합의 연기론에서부터 시작된다.

진화(進化)는 단 시일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세생생을 두고두고 인연화합을 통하여 변해가는 것이다.

한 세대(世代)도 제대로 살지 못한 반백년(半百年)만에 반만년(半萬年)의 유구(遺構)한 역사와 전통을 송두리째 빼앗기다니 어이가 없다.

언제는 서양 오랑캐라고 그렇게 배척(排斥)하더니 지금은 내어줘도

너무 많이 내어주고 따라가도 너무 빨리 따라간다.

너무 많이 내어주는 바람에 반도인(半島人)의 기질마저 내어줬다.

너무 빨리 따라가느라고 반도인의 정서마저도 내팽개치고 따라간다.

세계 생명공학분야 최고의 과학자 황우석 박사의 공과(功過)를 두고

말들이 많다. 한때는 세계 전 인류의 희망의 등불로 추앙(推仰)받던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과학자였다.

그가 연구한 체세포를 배양한 줄기세포 연구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온갖 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새 삶을 향한 흥분의 도가니로

세차게 몰아넣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또 한 번 반도인(人) 한국인의

손재주를 세계에 과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이다.

한국인이 즐겨 사용하는 놋젓가락이 한몫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이 놋젓가락 실력은 나중에는 미국으로 불려가서 한미(韓美)간에

특허논쟁을 불러오기도 했다.

우리국민들은 눈만 뜨면 경제, 경제 하는데 그때는 세계경제의 게임은 끝났다고 보았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가 실용화되기 시작하는 날이면 대한민국은

돈방석에 올라앉는다. 석유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큰소리 한번 쳐보자고 기대를 잔뜩 하고 있었는데!

그 기대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니, 하루아침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MBC 문화방송이 ‘솔솔’ 불을 지펴오더니 어느 날 밤 PD 수첩이라는 고발프로를 통하여 대(大)화재를 내고야 말았다.

세계 생명공학계의 선망의 대상으로 전 인류를 희망의 용광로로

몰아가고 있던 황우석호가 하루저녁에 좌초(坐礁)되고 만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도 그 영문을 모른다. 그이유도 모른다.

아직까지도 누구의 잘못인지 명확히 모른다.

그런데도 황우석 박사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것이다.

만일 황우석 박사가 미국의 새턴 박사를 앞서가지 않고

뒤따라갔다면 그래도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을까?

황우석 박사가 주도가 아니라 새턴 박사를 보조하고 따라갔다면

그래도 이런 누명을 뒤집어쓰고 낙마(落馬)하고 말았을까?

반도(半島)인(人)은 남이 잘되는 것은 못 보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오죽하면 남도 아닌 사촌이 논을 사는데도 배가 아프다고 하는 민족일까?

반도인은 사대주의 근성이 강하다.

종주국(宗主國)의 비호를 받지 못하는 인물은 굴욕(屈辱)당하고

거세(去勢)당하고 끝내는 요절(夭折)당하고 만다.

임진왜란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민족을 구출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그렇고, 조선말 개혁운동을 주도한 풍운아 김옥균 선생이 그렇고,

일제 36년 조국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그렇다.

반만년 세월을 민족의 숙명으로 내려온 절대빈곤에서 민족을 구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렇고, 영원한 서민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고 아쉬운(?) 영원한 국민의 우상 황우석 박사가 그렇다.

원하는 뜻을 다 펼쳐보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는 기량을 다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모두가 다 타인에 의하여 굴욕과 거세를 당하고

허망하게 쓰러져간 것이다. 원통한 죽임을 당한 분들도 있는 것이다.

대륙(大陸)에서는 집을 짓기 위하여 산에서 나무를 구할 적에 용도에 따라 벌채하여 쓴다고 한다. 광활(廣闊)한 대지(大地)에서 얼마든지

용도에 적합한 목재를 구할 수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땅이 협소(狹小)한 반도(半島)에서는 산(山)속의 많은 나무들 중에서 ‘쭉’ 곧고 잘 잘빠진, 가장 잘생긴 나무가 서까래 용도로 우선

잘려나간다고 한다.

그런 다음 약간의 세월이 지난 후에 그 다음으로 잘생긴 나무는

기둥용도로 잘려나간다고 한다.

그 후 긴 세월이 흘러간 후에 그 다음으로 잘생긴 나무가 대들보

감으로 사용되기 위하여 잘려나간다고 한다.

변화무상한 정변(政變)속에서 급변하는 유행(流行)속에서 안 베고

아껴두었다가는 남의 좋은 일시키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제한된 산림자원을 가진 반도에서는 곧고 잘생긴 나무를

아껴두었다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길 염려가 있기 때문에

우선 좋은 나무부터 골라 쓰는 것이란다.

반도(半島)인들의 새치기 문화나 빨리빨리 문화도 남에게 선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자기가 먼저 서둘려 선수를 치는 것이란다.

반면에 섬(島)나라에서는 집을 짓기 위하여 목재를 선택할 때 곧고

잘생긴 나무는 아껴두고 못생긴 나무부터 골라 벌목한다고 한다.

비교적 문화가 들어올 곳이 적고 나갈 곳도 없음으로 사회가 안정되고 유행에 둔감(鈍感)함으로 서둘지 않아도 내 것을 확보할 수가 있기

때문이란다. 섬나라인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분실물을

발견해도 우리 대한민국처럼 주워서 경찰서나 분실물센터에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 장소의 안전한곳에 그대로 두고 주인이

찾아가길 기다린단다.

영국에서는 가로수의 사과가 익어 떨어질 때까지 그대로 둔단다.

그만큼 변화가 없고 사회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일본이나 영국처럼 섬나라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늦게 가도 자기 몫을 확보할 수가 있기 때문이란다.

중국 사람들을 비롯한 대륙사람들은 지나치게 천천히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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