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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대탑과 개미 불사(佛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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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3-17 22:43 조회156,3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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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대탑과 개미 불사(佛事)

유마힐이 말했다.

“비유하자면 하나뿐인 자식을 그 부모가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아이를 보는 기쁨으로 잠시라도 아이를 떼놓질 않습니다.

자식이 병들면 부모도 병들고 자식이 나으면 부모도 낫습니다.

보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생이 병들면 보살도 병들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도 났습니다.

그 유명한 유마경의 한 게송(偈頌)이다.

부처님의 심부름으로 문병을 온 문수사리보살에게 유마힐 거사가

전한 말이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이 아픔은 타인의 아픔을 유추해서

얻은 아픔이 아니라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아픔을 말한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말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순수한 삶을 살아가는 아프리카의 부시맨들은

아버지의 몸에 난 상처를 알고 있는 아들은 이따금씩 같은 부위에서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또 일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은 아내가 짊어지고 오는 짐의 무계를

자기어께의 고통으로 느낀다고 한다.

이것을 우리는 공감이라고 한다.

공감은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하거나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식(假飾)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공감은 스스로 느끼고 감지(感知)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마음을 동체(同體)대(大)비(悲)라고 한다.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 속에 국민의 절대지지속에 당선된

대통령이 취임하고 경제가 살아나기기는 고사하고 불안하다.

아마 15년 이때쯤 당시로서는 사상 최고의 외한보유고속에 출발한

그때 새 정부도 역사바로서우기, 경제정의 바로세우기, 등의

신선한 정책을 외치면 출발했지만 결과는 역사도 바로세우지 못하면서 전직대통령 두 사람을 사법처리하여 세계에 부패공화국으로 우사를

시키더니 말년에는 I, M, F라는 엄청난 국민적 시련을 몰고 왔다.

왜 15년 전 그때 그 일이 생각나는 것일까?

잃어버린 지난10년이라고 말들 하나 10년 동안에 우리국민들은

스스로 I, M, F를 극복하고 또다시 사상최고의 외환보유고를

물러주었는데도 뭔가 모르게 불안하기만 하다.

공포심 마져 몰려온다.

하기는 일부 사람들은 I, M, F를 듣고 보기만 하였지 느끼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10년 전 I, M, F 때는 없는 서민들은 고통을 받았지만

일부 돈 많은 부자들은 부(富)를 쌓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혹독한 경험을 한사람들만이 I, M, F의 무서움을 안다.

외환위기의 두려움을 공감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권, 재벌뿐만 아니라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특권 종교인들은 I, M, F를 제대로 모를지도 모른다.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서민경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일부 종교계에는

호황(好況)이라는 웃지 못 할 말들도 있다.

능엄정사에는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모셔져 있다.

능엄정사를 창건한 해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스님으로부터

기증받은 아주 귀중한 능엄정사의 보물이다.

“법사님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 라요. 라고 하시면서

설로판지에 싼 보일락 말락 한 미세한 물체를 주셨다.

“법사님 이 사리는 열심히 기도하면 개수가 늘어납니다.

증가(增加)하면 본래 내 것은 돌려주세요.

의심쩍어하는 나를 보고 스님은 허허 웃으셨다.

나는 그때 까지 보관된 사리는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가까이서 손에 들고 볼 수 있는 기회는 송광사에서 한번보고

이번이 두 번째 친견(親見)이었다.

“나한데도 이런 가피(加被)가? 이런 광영(光榮)이!

하는 생각으로 고맙게 받아 모셔온 것이다.

오는 길에 불교전시관에 들려 사리함을 구입하여 즉석에서 모셨다.

사리함에 모시고보니 확대경을 통하여 보이는 사리(舍利)는

너무나도 영롱하고 신기했다.

그러나 크기가 작은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다른 곳에서 내가 친견한 사리와 크기가 비교가 되는지라

솔직히 공개(公開)를 꺼리고 내방에 모셨다.

소문을 들은 스님들이 행사장에 필요하다고 동아대학 석당 홀을

비롯한 여러 곳에 모시고 갔다.

같은 불제자(佛弟子)이고 많은 불자(佛子)님들이

친견할 수만 있다면 하는 원(願)에서 부담 없이 제공했다.

한번은 석당 홀 행사장에 나도 참석했다. 나는 놀랐다.

많은 동참불자님들이 사리를 친견하고 환희 심을 내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용기를 얻은 나는 사리를 부담 없이 공개(公開)키로 했다.

법당 한쪽자리에 사리(舍利)를 전해주신 스님의 말씀대로

“미얀마에서 모시고온 진신사리” 라는 팻말과 함께 모셔둔 것이다.

능엄정사를 찾은 불자(佛子)님이라면 언제라도 부담 없이

친견(親見)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에서 기적이 발생했다.

법당에 오실 때 마다 사리함(舍利函)에 불을 켜고 친견하든 보살님이

“법사님 사리를 또 구하셨어요? 사리가 많이 늘어났는데요.

크기도 많이 커진 것 같고요. 한다.

“보살님 사리가 애들 과자입니까? 또 구하게요.

능엄정사가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이렇게 함부로? 모셔나서

그렇지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 친견은 사실 어렵습니다.

나는 평소에 사리에 대한 존경심과 관심이 없는

불자님들에게 서운해 하든 마음을 괜히 평소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보살님께 전하고 있었다.

“아니 법사님 한번 와보세요. 법사님도 요즘은 안보셨건 만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다! 보살님의 말씀대로 사리숫자가 엄청 늘어났다.

개수뿐만 아니라 크기 또한 두 배 가까이 커진 것이다.

과연 가능한 일인가? 정말로 가능한 일인가?

불현듯 나에게 사리(舍利)를 전해준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법사님 열심히 기도하면 숫자가 증가(增加)하고 크기가

증대(增大)합니다. 증가(增加)하면 내 것은 돌려주세요.

스님말씀대로 증가(增加)하고 증대(增大)하는 기적을 이룬 것이다 .

스님 말씀대로 나 웅봉법사를 비롯한 능엄정사 불자님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주검의 기도가 기적을 만든 것이다.

능엄정사는 6년째 신묘장구대다라니108독 주력(呪力)기도를

매일 기본으로 수행한다. 그 후 다른 기획기도를 올린다.

매일 사시예불은 10시에 시작되면 오후 1시쯤 끝이 난다.

나 웅봉법사는 대다라니니 100만 독(讀) 기도를 서원하고

처음 3년은 새벽, 사시, 오후, 저녁, 사분 정진을 했다.

지금은 새벽, 사시, 저녁 삼분 정진을 한다. 7십만 독을 넘기고 있다.

모두가 일심으로 따라주시는 불자님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법사님 우리가 매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일심으로 하니까

신통(神通)하고 묘용(妙用)한 기적이 일어나는가 봐요?

자주 기도에 동참하는 보살님이 하신 말이다.

열심히 기도하시드니 한 소식 하셨는가 보다.

금년 하안거 자비(慈悲)참법(懺法) 3만(萬)배(拜) 기도의

가피(加被)는 더 많은 기적을 이룬 것이다.

건강상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보살님들이 오육(五,六)월

삼복더위 속에서도 주검을 각오하고 3만 배 기도를 성취한 것이다.

주검을 담보로 일구어낸 이 기적의 가피력(加被力)을 경제위기에

직면한 서민 중생(衆生)을 위하여 회향(回向)하는 불사를 하고자 한다.

서민경제 파탄으로 멍든 중생의 아픈 마음을 치유(治癒)해 주시는

약사(藥師)여래(如來)부처님 탑(塔)을 모시기로 한 것이다.

서민불자님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탑 속 복장(腹藏)물 서원(誓願)지

한 장에 1만(萬)원의 불사(佛事)금으로 동참 할 수 있도록 했다.

“법사님 소총 100방보다 대포 한방이 더 낮습니다.

큰 시주 한사람만 받으면 다 해결 됩니다”

하며 나를 걱정해 주시는 고마운분들의 격려가 왠지 이번만큼은

비웃는 것으로 들리는 마음은 무슨 마음일까?

“알지도 모르면서. 님들이 I, M, F 알아” 항의 아닌 항의가 나온다.

그분들이 볼 때는 나 웅봉법사는 한심한 졸장부(拙丈夫)일지도 모른다.

탑(塔) 불사(佛事)를 하면서 일만(萬)원짜리 동참이 어디 있느냐?

고 비웃을 것이다.

일만(萬)원짜리 불사(佛事)도 형편이 안 되어 동참하지 못하는

불자님들이 이외로 많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법사님 우리 다섯 식구인데 나빼고 네 명만 해주세요.

부처님 진신 사리탑 복장 서원(誓願)지를 봉안하면 좋다고 하니까

동참은하고 싶은데 돈이 모자라 자기 자신만을 빼는

살신성인(殺身成仁)보살님들을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생각 같아서는 동참(同參)금을 5천원으로 낮추고도 싶다.

그럼 불사가 안 된다. 애들 장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솔직히 만(萬)원으로 해도 서글퍼서 동참을 주저하는 불자님들도 있다

“부처님 힘없고 돈 없고 경제가 어려운 서민 불자님들이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나 웅봉법사는 말도 되지도 안는 떼 기도를 올려본다.

기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 중에 화두(話頭)는 잡히지 않고

부처님께 떼만 쓰고 있는 셈이다.

법(法)에도 헌법(憲法)보다 떼 법(法)이 통한다는데?

“웅봉 3만(萬) 부처님을 모셔!

그날도 나 웅봉법사는 항상 수행하는 새벽5시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 기도를 마치고 사홍서원을 올리는 순간 귀전을 울리는

부처님의 숙제를 받은 것이다.

“3만(萬) 부처님을 모셔라!

나 웅봉법사가 올리는 떼 기도에 부처님께서는 떼 숙제를 내려주신

것이다. 혹 뗄 여고 하다가 혹하나 붙인 격이 된 것이다.

금(金)으로 모시면 한 돈으로 한분을 모셔도 3만돈 수억(數億)이다.

은(銀)으로 모시면 3만(萬) 돈은 3천(千) 냥이니 은수저 한 벌이

1냥 5돈이면 은수저 1천오백 벌 값이다. 경비가 탑(塔)보다도 더 많다.

아침운동 길에서도 사시(巳時)기도에서도 머리를 떠날 줄을 모른다.

그날 사시예불 사홍서원을 마치고 일어서는 순간 눈앞에 동전(銅錢)이

우두둑 떨어졌다.

“응?....... 하며 처다 보니 10원 짜리 동전(銅錢)인데 금방 사라졌다.

“그래 바로 그것이구나! 나는 순간 깨달은 것이다.

10원짜리 동전에는 다보탑과 함께 다보여래(多寶如來)가 모셔져 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무진의 보살의 값진 영락(瓔珞)을 보시 받은

관세음보살이 두 몫으로 나누어 한몫은 석가모니 부처님께,

한몫은 다보여래께 공양(供養)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능엄정사가 모시는 약사여래 대탑(塔) 정면(正面)에 영락(瓔珞)을 손에든 해수(海水)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이 모셔져 있다.

우선 화폐를 탑(塔)속에 보관하면 죄(罪)가 되는지를 알아봤다.

화폐를 훼손하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 다는 유권해석을 받고는

돈 만(萬)원이 없어서 약사여래대탑 불사에 동참하지 못하는

불자님들은 10원동전이라도 넣어 동참 할 수 있도록 권선(勸善)했다.

부처님은 3만(萬) 부처님을 모시라고 하셨는데 나는 3만(萬) 3천(千) 부처님을 모시기로 했다. 모범학생은 숙제를 더 많이 해간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 졌다.

이번 능엄정사 약사여래대탑 불사는 개미 불사(佛事)다.

대한민국 사찰불사에서 기록될 불사(佛事)인지도 모른다.

단 한 영가님 5만원을 빼고 나면 모두가 1만(萬)원을 동참했다.

1만(萬)원의 동참(同參)금으로 몇 명을 어떻게 모아서

무슨 탑을 세운단 말인가?

땅에 떨어져도 주워가지도 안는다는 10짜리 동전을 얼마나 모아서

어떤 가피(加被)를 입고, 무슨 복(福) 받는다는 말인가?

반신반의(半信半疑)할지도 모른다. 염려(念慮)를 하실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웅봉법사는 할 수 있다. 고 확신한다.

나 웅봉 법사는 10년 전 I, M, F를 앞장서 극복해 냈다.

새마을 지도자 부산광역시 협의회 회장으로 금모으기운동의

주역으로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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