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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인생 제품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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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3-17 22:42 조회4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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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인생 제품인생

점심 공양 중에 보살님들의 화두는 단연 어제 구입한 김장꺼리 배추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한 보살님이 먼저 말했다.

“나는 어제 오후6시에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밤 11시에 씻느라고 밤잠을 설쳐다, 고 말했다.

다른 한 보살님이 말을 받았다.

“그럼 싱거울 덴데! 나는 오후 6시에 저려서 아침 7시에 씻었더니 간이 딱 맛 든데, 하니 또 다른 보살이 거들었다.

“나는 어제 저녁에 저려놓고 기도마치고 집에가 오후에 씻으려고 그냥 두었는데 짜 울까? 고 걱정을 하자

한방 가득한 보살님들이 너도 나도 한 말씀을 거든다.

“아이고 그 김치 짜서 못 먹는다. 어쩌려고 지금까지 놓아두었우?

“그 배추 버려야 한다, 짜서 어찌 먹을 것이고? 괜히 양념만 버린다.

“아니다 괜찮다, 대강 버물려다가 명년 봄 해동하고 먹어 면된다.

등 야단법석들이다. 걱정도 가지가지다. 처방도 가지가지이다.

이런 걱정과 처방과 야단법석을 보고 나는 좀 의아했다.

왜들 저럴까? 꼭 어제 저녁 밤11시에 씻은 보살님 배추가 싱겁고,

아직 씻지도 않고 있는 보살님 배추가 짤 것이란 보장은 없는 것인데?

또한 아침에 씻은 보살님 배추가 간이 딱 맞는다는 확신도 없는데!

저 소란들일까?

밤11시에 씻은 배추도 소금을 많이 쳤다면 은 짤 수도 있고,

아직 안 씻은 배추도 소금을 적게 쳤다면 싱거울 수가 있는 것이다.

같은 량(量)의 소금이라도 배추를 절인장소가 실내(室內)이냐?

실외(室外)이냐? 에

따라서 배추는 짜고 싱거운 것은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다.

불교를 수행하는 절간에서 불교의 평범한 인연(因緣)화합(和合)의 진리를 모르고들 떠들고들 있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오지랖에 쌓아주어도 모른다. 더니

몰라도 너무들 모른다.

배추라는 인(因)이 소금이라는 연(緣)을 만나는 조건(條件) 즉, 소금의 량(量)과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싱거울 수도 있고, 짤 수도 있고,

심지어는 너무 짜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든지 변할 수가 있는 것이 인연화합의 진리이다.

이 인연화합의 결과로 일체 중생은 각각의 개성(個性)을 가지고 있다. 유정(有情), 무정(無情)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다 각각(各各)의 개성(個性)을 가진 작품(作品)들이다.

불교에서는 각각의 작품인 중생들의 개성(個性)과 수준을 근기(根基)라고 한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각각 인연(因緣)화합(和合)의 업력(業力)에 따라 각각의 성품(性品)이 형성(形成)되는 진화론(進化論)에 가까운 에 진리를 설(說)하신 것이다.

우주만물이 원래 하나인데 각각의 인연(因緣)화합(和合)으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모습으로 나타난 각각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천태만상의 각각 다른 수준과 근기에 따라, 각각 다른 중생들을 위하여 각각 다른 법문(法門)을 설(說)하신 것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많다는 표현으로 겁(劫) 또는 8만(萬)이라는 숫자를 즐겨 사용했다. 8만(萬)대장경(大藏經),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등은 숫자 개념보다는 많다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헌데 오늘날 우리 주변을 지배하려는 서양사상은 개인주위를 표방하면서서도 그 내면을 들어다보면 개인주위보다는 전체주위, 개성(個性)보다는 평등(平等)이 강요되는 제품(製品)사회(社會)이다.

제품사회의 근간(根幹)은 기독교 사상이 주된 영향이다.

기독교에서는 인연화합의 진화론이 인정되지 않는다.

창조론(創造論))이다. 인간을 비롯한 일체 만물이 모두 하느님이 만든 창조물이다. 최소한 하느님 앞에서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들도 손자도 모두가 평등한 하느님에 의해 만들어진 제품이다.

선(善)한일을 한사람이나 악(惡)한일을 한사람이나 관계가 없는 평등사회이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아주선한 사람이나,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살인을 저질은 대죄인도 모두가 하느님의 창조물이라 하느님 앞에서는 하느님만 믿으면 천국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가는 제품(製品)들인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생활필수품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들이 생산되기 시작하여 찬란한 기독교적 제품시대가 도래(到來)한 것이다.

생필품, 산업제품 뿐만 아니라 이제는 인간도 제품시대이다.

인기 연예인 누구 이마에, 누구 코에, 누구 눈으로 등, 원하는 대로 제품을 만들어 낸다.

음식도 소위 퓨전음식이다. 만들기만 하면 된다. 모두가 제품이다.

작품은 비교가 될 수 없다. 각각 다른 조건에서 생산된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작품이라 많은 작품들이 모여 있어도 모두가 각각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 비교가 안 된다.

작품성 자체를 평가 할 수는 있어도 비교평가는 할 수가 없다.

절대평가는 가능해도 상대평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품은 작품과는 달리 비교가 가능하다.

같은 조건에서 제작된 제품도 사실은 똑 같은 제품이 될 수가 없다.

똑 같은 제품이라도 한자리에 모이면 자연히 우열(愚劣)이 나타난다.

동일 조건으로 대량생산된 제품은 제품자체에 대한 절대 평가와 서로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는 비교평가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선택받는 제품이 있는가하면 소외당하고 배척받는 불량품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과거 5~60년 전보다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살고 있다. 그러나 영국민간 경제연구소에서 조사한 국민 행복만족도에서 200여국가중 102위를 기록했고 한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자살률은 세계1위란다.

해방이후 최악의 경제상항에서도 우리는 별다른 불평, 불만 없이 스스로 주어진 여건아래 성실히 살아왔다.

유행가 가사처럼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처절한 아픔을 안고도

서로 상처를 탄식하고 달래가며 묵묵히 진솔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이것이 불교(佛敎)문화를 근간(根幹)으로 살아온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온 작품성 민족의 정서(情緖)이다.

이 자랑스러운 민족의 정서가 변한 것이다. 물든 것이다.

세계화를 앞세우며 무분별하게 밀고 들어온 서양문화 ,기독교 사상, 제품정서에 우리도 모르는 순간에 점령당하고 오염되고 만 것이다.

조그마한 것도 비교한다. 사소한 것도 비교한다.

참지 못하고 흥분한다. 그리고 불평하고 불만하고 고치려고 달려든다.

그 와중에 전통가치관은 무너지고 미풍양속은 외면당하고 인륜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민족은 와해되고 국가는 흔들린다.

가치관이 상실된 민족, 전통이 훼손된 국가가 과연 올바른 조국(祖國)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군 할아버지가 외면당하고, 단군신화 삼국유사가 마귀역사이고,

불국사 석굴암이 미신소굴이라고 한목소리로 외치며 부정하는 논리는 가히 전체사상 제품문화의 극치에 달한다.

우리는 알아야한다. 일체중생은 제품 아닌 작품이라는 사실을!

나부터 제품이 아닌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 뿐인 작품이라는 것을!

“보살님들 배추 짜서 김치 어떻게 담겨 공양하셨는지요?

각각 담겨 먹었지요? 그러니까 작품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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